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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과하주

  • 지정 : 무형유산
  • 한자명 : 金泉 過夏酒
  • 유형분류 :무형유산 > 음식제조 > 민가음식 > 향토술빚기
  • 시대 : 역사 미상
  • 지정일 : 1987-05-13
  • 소재지 :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791-1
김천 과하주는 현재 김천시 남산2동 179소재 과하천(過夏泉)에서 나오는 물로 술을 빚으면 명주가 된다는데 근거하고 있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대단히 좋고, 특히 여름을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라는 주명이 붙었다고 전한다. 이 샘은 원래 ‘주천(酒泉)’, ‘김지천(金之泉)’이라고 향전(鄕傳)되어 왔고, 김천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임란 때 이곳을 지나던 명장(明將) 이여송(李如松)이 이 샘물 맛을 보고, 중국의 금릉(金陵)에 있는 과하천과 물맛이 꼭 같다고 하여, 이때부터 과하천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주천’이란 샘이름으로 미루어 과하주는 이곳의 토속주로서 대단히 깊은 뿌리를 가졌음을 알겠고, 임란 전설은 하나의 시기를 추정하는 지표(指標)가 될 듯도 하다. 조선시대, 일제시대를 통하여 과하주는 빚어졌고,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 알려져 기록에 남길 정도가 되었다(佐田吉衛編, 酒造讀本 1938 朝鮮酒造協會). 과하천에 세운 비석에는 “도감임광범 김병희 입석 금릉주천 광서팔년임오정월 일(都監林廣範 金秉禧 立石 金陵酒泉 光緖八年壬午正月 日)”이라 새겨져 있으니 앞의 향전과 더불어 이 또한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토속주(土俗酒)로서 전수되던 이 술이 본격적으로 생산체제와 규모를 갖추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 한일 합작인 김천주조주식회사(金泉酒造株式會社)가 설립되어 과하주와 약주(藥酒), 탁주(濁酒)가 제조 판매되면서 부터이다. 당시 이 회사의 사장은 고덕환(高德煥)이었으며, 기술자는 조무성(趙武聲)과 오정수(吳亭洙) 그리고 일인(日人) 죽촌수부(竹村壽夫) 등이었다. 김천주조주식회사는 곡주양조(穀酒釀造)가 불가능해진 1945년의 태평양전쟁 말기에 문을 닫았으나, 과하주는 민속주로서 이 지역의 주민이 가내(家內) 양조(釀造)로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학술자료

  • 1. 과하주양조에 관한 문헌적 고찰(1992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이성우 , 전정일 , 배상면 / 발행처 : 동아시아식생활학회
  • 2. 김천과하주의 유래에 관한 연구(1998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정은재 / 발행처 : 동국전문대학
  • 3. 한국의 전통주(2010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정동효 / 발행처 : 유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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