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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포 유홍원의 현금 및 어은보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江浦柳弘源의玄琴및漁隱譜
  • 유형분류 :유물 > 과학기술 > 놀이_유희용구 >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99-12-30
  • 소재지 : 안동시 서후면 광평2리 1252
이 거문고(양양금)를 所藏하고 있는 류기운에 依하면 그의 八代祖 江浦 柳弘源(1716~17 81)으로 傳해 왔다고 한다. 柳弘源은 양양郡守와 順天副使를 지낸 函碧堂 柳敬時의 孫子로 本貫은 全州이다. 肅宗 42年(1716)에 태어나 正祖 5年(1781)에 죽었다. 양양금의 梧桐나무 앞판 後面에는 다음과 같은 記錄이 있다.「材則此邑北隅洛山寺 梨花亭 所立桐也 未知其 幾百年而人皆以琴稱之 歲丁酉仲春爲風所拔故余始得 雍正四年丙午十二月日自造傳之無限」 이러한 記錄으로 보아 양양금은 洛山寺 梨花亭에 서있던 梧桐나무를 1717年 2月에 얻어 9年後인 1726年 12月에 드디어 거문고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거문고가 分解되지 않고 原形 그대로였다면 아마 거문고의 制作年代 및 由來를 밝히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따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양양금의 背面 밤나무판에는 江浦 柳弘源의 “文集卷之一”의 詩 內容이 실려 있어 이 거문고의 오랜 歷史를 證해 주고 있다. 漁隱譜는 現在 安東市 西後面에 살고 있는 柳敬時의 10代孫이 所藏하고 있다. 이 譜는 朝鮮朝 肅宗朝에 양양부사를 지낸 柳敬時(1666~1737)가 筆寫하였다고 하나 確實하지 않으며 當時의 거문고와 함께 傳해지고 있다. 表示에는 오른쪽부터 “平羽調合部滄浪者漁隱”이라고 쓰여 있는데 滄浪者漁隱은 英祖때 活躍하던 金聖器로 알려져 있다. 後半部 7章 끝에 “己亥仲夏寄寓故里村家時揮干謄出”이라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己亥年에 筆寫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학술자료

  • 1. 韓國音樂學資料叢書., . 17(1989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국립국악원전통예술진흥회 / 발행처 : 국립국악원
  • 2. 安東文化財大觀(200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안동시 / 발행처 :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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