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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 채수 신도비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懶齋 蔡壽 神道碑
  • 유형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지석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98-08-03
  • 소재지 :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 산71
蔡壽(1449(世宗 31)~1515(中宗 10))의 字는 耆之, 號는 懶齋이고 本貫은 仁川이다. 南陽府使 申保의 아들로 19歲인 1468年(世祖 14)에 生員試에 合格하고, 이듬해 文科에 壯元하였으며, 司憲府 監察을 거쳐 藝文館 修撰·弘文館 校理·持平·吏曹正郞 等을 歷任하였고 「世祖實錄」의 編纂과 「睿宗實錄」編纂에도 參與하였다. 1477年에 應敎가 되어 任士洪의 非行을 彈劾하였고, 承旨를 거쳐 大司憲으로 在職中 廢妃 尹氏의 存恤을 請했다가 王의 노여움을 사서 벼슬에서 물러났다. 1485年에 다시 敍用되어 忠淸道觀察使가 되었으며 成均館 大司成을 거쳐 戶曹參判에 올랐고, 燕山君 卽位 後 外職을 求하여 戊午士禍를 免하였다. 1499年(燕山君 5) 以後 禮曹參判, 刑曹參判, 平安道觀察使 等에 任命되었으나 病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甲子士禍에 連累되어 慶尙道 단성으로 杖配되었다가 얼마 後 풀려났다. 1506年에 中宗反正이 일어나자 여기에 加擔하여 奮義靖國功臣 4等에 錄勳되었고 仁川君에 封君되었다. 얼마 後 벼슬을 버리고 慶尙道 咸昌에서 隱居하여 快哉亭을 짓고 讀書 風流로 餘生을 보냈고 1511年(中宗 6) 「薛公瓚傳」이라는 稗官小說을 지었다가 輪廻禍福을 말하여 內容이 바르지 못하다는 非難을 받고 冊까지 불태웠다 한다.

학술자료

  • 1. 금석문 탁본조사보고서 경상북도 Ⅱ(2015년 발행)
    조사보고서 / 저자 : 문화재청,불교중앙박물관 / 발행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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