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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 좌명공신 교서 및 회맹록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金英烈 佐命功臣 敎書 및 會盟錄
  • 유형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책류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98-04-13
  •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371
이 資料는 1401年(太宗 1) 2月 太宗의 卽位에 有功한 人物 46名을 佐命功臣으로 冊封한 後, 個人에게 내린 功臣敎書 및 功臣冊封 以後 朝鮮初 以來의 歷代功臣인 開國·定社·佐命功臣들이 會盟한 會盟錄이다. 이 文書의 수급자인 金英烈(1370, 恭愍王 19~1421, 世宗 3)이 佐命功臣 3等에 冊封될때에는 功臣敎書와 功臣都鑑에서 發給한 錄券이 함께 發付되었으나, 現在 錄券은 남아있지 않고 功臣敎書만 남아있는 形便이다. 이 資料의 主人公인 金英烈(1370~1421)은 本貫은 義城, 字는 烈之, 號는 孟巖으로 義城에서 태어났다. 그의 入仕 經路는 알 수 없으나, 麗末鮮初의 變革期에 武班으로 立身하였던 것으로 推測된다. 生涯 前半期의 經歷은 不分明하고 1394(太祖 3) 京畿道右道水軍僉節制使에 任命된 以來 水軍節制使, 中樞院府使를 歷任하였다. 1400年(正宗 2) 兵曹參判에 올라 太宗의 王位繼承 野慾에서 빚어진 이른바 朴苞의 亂이라고 불려지는 政爭에 參與하여 佐命功臣 3等에 冊封되었다. 以後 知義興三軍府事·水軍節制使·三道水軍都指揮使·知承樞府事 等을 歷任하였다. 死後에 右議政에 贈職되고 諡號는 襄昭이며 醴泉의 新川書院에 祭享되었다. 著書로는 1865(高宗 2)에 그와 關聯된 各種 資料들을 收拾하여 編纂한 <孟巖集> 1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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