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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달선생 신도비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洪貴達先生 神道碑
  • 유형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79-01-25
  • 소재지 :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산5
이 碑는 文臣이며 忠諫으로써 節義를 다한 忠臣 洪貴達 先生(世宗 20年(1438)~燕山君 10年(1504))의 神道碑로 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知經筵事藝文館大提學 弘文館大提學 知成均館事 南袞이 撰하고 그의 아들 進士 洪彦國이 써서 嘉靖 14年(中宗 30年 西紀 1535)에 建立한 것이다. 碑文은 磨滅되어 判讀키 어려운 곳도 있으나 缶林洪氏 世德錄에 原文이 收錄되어 있으며 龜趺와 이首의 刻法이 優秀한 作品이다. 先生의 字는 兼善, 號는 虛白堂으로 世宗 20年(1438)에 羊積里에서 태어나서 世祖 7年(1461) 江陵別試 文科에 乙科로 及第하여 世祖 12年(1466)에 世子侍講院說書로서 文武를 兼하여 宣傳官에 任命되었고 世祖 13年 李施愛의 亂때에 功을 세워 吏曹正郞에 승진하였으며 그 後 忠淸道 觀察使, 刑曹, 吏曹參判, 慶州府尹, 大司成을 거쳐 戶曹判書를 지냈으며 燕山君 4年(1498) 戊午士禍때 10餘條에 달하는 王의 亂政을 諫하다가 좌천되었고, 燕山君 10年 慶源으로 流配途中 端川에서 絞殺되었다. 그 後 中宗反正(中宗元年 1506)으로 復官되고 吏曹判書에 추증, 肅宗때 文匡의 諡號가 내렸다.

학술자료

  • 1.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선재(選載)된 홍귀달(洪貴達)의 한시(漢詩) 일고(一考)(2016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박종순 / 발행처 : 근역한문학회
  • 2. 洪貴達의 外國 使臣과의 交流와 世界 認識(2020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전민경 / 발행처 : 동양한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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