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이미지로보기

이전 다음

우금촌 두암고택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友琴村 斗巖古宅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75-12-30
  • 소재지 :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304
大門채가 正寢이나 사랑채의 軸과 同一線上에 있지 않고 별도로 놓였고 坐向조차 달리한 것이 이 집의 특성이다. 그러나 大門간은 시멘트제의 기와를 얹은 초라한 것이다. 원래의 건조물이 아닌 것이다. 당초의 大門間도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大門을 들어서면 向左에 바로 咸集堂이 있다. 正面 三間, 側面 二間, 홑처마 팔작지붕의 이 사랑채는 넓은 板床四間과 房二間으로 平面을 이루고 있다. 板床의 마루 前面에는 板璧과 띄살무늬 분합이 달렸고 房에는 머름을 드린 위로 역시 띄살의 분합을 달았는데 土壁이다. 板床의 마루와 房 下枋밖으로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大門안에서 向右하면 높은 죽담위에 지은 正寢과 사랑채가 보인다. 正寢과 사랑채는 같은 口字形 配置 組織內에 있는데 사랑채가 앞쪽에 正寢이 뒤쪽으로 布置되는 方法에 따랐다. 大門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사랑채의 二間 側面은 正寢보다 一間 돌출하였다. 柱間에 수장드리고 문얼굴을 내어 바라지창을 달았는데 앞쪽 칸엔 외짝문이, 다음 칸엔 분합이 달렸고 주위는 土壁이다. 前面은 三間이다. 사랑채는 前退가 三間에 걸렸고 向左 端間은 板床으로, 나머지 두 칸은 각각 방을 드렸다. 기둥은 方柱이고 납도리집이며 홑처마이다. 다른 장식은 별달리 없다. 사랑채의 向右端에 連于하여 正寢으로 들어가는 中門이 있다. 中門을 들어서면 반듯한 마당이 보인다. 西邊에 집이 들어찼고 正面으로 正寢의 大廳이 보인다. 大廳은 三間으로 활짝 열렸고 높직한 方柱가 威勢좋게 서있다. 大廳의 面積은 六間인 셈으로 널찍하게 활달하다.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이다. 따라서 三樑架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大廳 後面壁은 中枋 以上에 土壁을 치고 其下에 문얼굴 내어 바라지창을 달았다. 이 집 특징 중의 또 하나는 大廳에서 보는 架構에 있다. 側面이 一間인 규모이면 보통은 五樑架로 구성한다. 이 집에서는 三樑架로 하였다. 굵고 强勁한 大樑을 天然木材의 灣曲性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채택하고 그 中央에 板臺工을 세워 宗道里를 받게 하였다. 이로 因하여 서까래는 長椽이 소요되었다. 이 집 主人이 욕심이 있었던지 아니면 이 시절만 하여도 長材를 넉넉히 입수할 수 있었는지 어쨌든 지나칠 만큼 풍부하게 나무를 사용하였다. 正寢은 매우 古格을 지니고 있다. 이 집을 지은 분은 宣祖 四年(西紀1517年)에 出生하여 仁祖 十七年(西紀1639年)에 별세하신 斗巖 金友益公이었다. 金公은 十八歲에 成婚하고 二十歲에 分家하였다 하며 正寢은 이때에 創建하였다고 한다. 正寢의 現狀과 檢出되는 技法 等으로 미루어 기록과 合一하는 시기에 창건되었다고 하여도 무리가 없겠다. 그러나 사랑채와 咸集堂 그리고 家廟는 그보다 훨씬 그 時代가 뒤떨어진다. 家廟는 正面 三間, 側面 半間, 맛배지붕 홑처마의 구성이며 前退를 開放하고 平柱를 圓柱로 썼으나 다른 기둥들은 方柱이다. 施彩한 흔적은 없다. 正寢의 後苑은 園法한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황폐되었다. 咸集堂 正面 3間, 側面 2間, 八作지붕 사랑채 正面 7間, 側面 1間大廳 正面 5間, 左右側面 6間, Π字집
목록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문화유산과
전화번호 :
 054-880-3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