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리스트로보기

이전 다음

농암사당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聾巖祠堂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인물_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73-08-31
  • 소재지 :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163
3×3칸의 外形을 보이나 內部의 平面으로는 3×1칸에 前退를 둔 것이다. 聾巖 李賢輔(世祖 13年, 1467~明宗 10年, 1555)의 神位를 奉安한 祠堂이며, 四周에 方形의 막돌기와 담장과 神門을 두었다. 祠堂은 宗孫 李龍九氏의 住家 後便山麓에 位置하였으며, 마을 한편에는 汾江書院과 聾巖所居의 愛日堂, 그리고 그 岩壁下에 大刻字 “聾巖先生舊庄” 6字 등 一連의 聾巖關係 遺蹟이 陶山書院에서 西쪽으로 건너다보이는 江邊에 자리 잡고 있었다. 祠堂內에는 主壁에 聾巖影幀 一軸이 揭安되어 있는데 紅袍戰笠 一궤案을 앞에 놓은 坐像(全身)이다. 所傳에 의하면 作者는 玉峻上人(畵僧?)이며, 聾巖의 慶尙道觀察使(兵使兼任) 時節의 所寫라 한다. 祠堂은 正面 三間에 共히 貢板을 받친 井字살 분함문이 있으며, 側壁에도 井字살 光窓을 내었는데 그 構成法과 솜씨가 禮安鄕校 大成殿이나 烏川洞 後彫堂의 家廟의 경우와 매우 恰似하다. 생각건대 愛日堂을 中心으로한 이 汾江一帶는 元來 聾巖修學과 退官隱居의 本居地였으며, 汾江山川의 秀麗했던 고장으로서 그가 남긴 聾巖歌, 春眠曲, 漁父詞 등 自然을 읊은 많은 時調가 이곳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聾巖은 1542年 戶曹參判을 고비로 溫泉浴을 핑계 삼아 一時 落鄕했었으며 1546年부터 다시 出仕하여 官이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이 祠堂은 1976年 4月 安東댐 水沒로 陶山面 汾川洞에서 現位置로 移建되었다.

학술자료

  • 1. 安東文化財大觀(200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안동시 / 발행처 : 안동시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문화유산과
전화번호 :
 054-880-3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