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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유허비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易東遺墟碑
  • 유형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지석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73-08-31
  • 소재지 :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1262-3
高麗後期의 學者 禹倬의 舊居址에 세워진 碑이다. 禹倬(高麗 元宗 4年, 1263~忠惠王 復位 3年, 1342)의 字는 天章, 卓甫, 號는 易東, 本貫 丹陽, 進士 天珪의 子, 諡號 文僖, 易學, 卜筮에 通曉하였고 처음으로 程朱學을 硏究 傳授하였다고 한다. 忠宣王 元年(1308) 王의 失德을 諫하다가 禮安에 退居하여 優遊林泉하였으며 忠肅王代에 屢次 召命이 있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後에 成均館祭酒가 되어 致仕하였다. 禮安의 舊居知三里는 易東으로부터 始作되었다고 하며 碑文에 그 연유를 “里號知三白先生始道學禮儀節操三者是矣”라 설명하고 있어 異名이 易東 自身의 學德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碑文에 “人所愛慕如此後二百餘年退陶夫子建院於舊居北十里江上與多士祀之”라 하였는데 禮安의 易東書院은 退溪가 세웠던 來歷을 알 수 있고 또 正廟己酉年(正祖 13年 서기 1789年)에 鄕人士와 後孫들이 遺墟에 碑를 세웠으며 6년 후에는 安東府 北의 鼎井山에서 묻혔던 墓碣이 出現하매 成封墳하였다고 하였다. 지금의 碑는 高宗 17年(서기 1880년) 4月에 옮겨 세우고 陰記를 刻하였다고 하였는데 正祖 己酉年에 鄕人後孫들이 세웠던 遺墟碑와의 關係는 알 수 없고 이 碑의 末尾에는 後學 漢城府右尹 眞城 李彙載가 撰하고 載寧 李宇亮이 碑誌를 썼으며 碑陰은 前 慶尙道都事 金興洛이 썼다고 하였다. 또 末尾에 “正廟己酉後九十二年 庚辰四月 日移竪刻陰”이라 맺었는데 正祖 13年 當時의 立碑事實을 分明히 起點으로 삼은 것을 보면 舊碑를 새로이 代替하였거나 或은 改刻移建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어쨌든 退溪의 建院事實과 前後兩次의 遺墟碑 建立이 있어 現在에 이르고 있음은 매우 意義가 크다고 하겠다. 이 碑는 元來 安東郡 禮安面 宣陽洞에 있었던 것을 1976年 4月 安東댐 水沒로 現位置에 移轉한 것이다. 碑總高 312cm, 碑身高 190cm, 碑幅 77cm, 厚 32cm 碑表字徑 約 15cm 碑陰字徑 約 4cm

학술자료

  • 1. 安東文化財大觀(200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안동시 / 발행처 : 안동시
  • 2. 금석문 탁본조사보고서 경상북도 Ⅰ(2014년 발행)
    조사보고서 / 저자 : 문화재청,불교중앙박물관 / 발행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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