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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장

  • 지정 : 국가무형유산
  • 한자명 : 箭筒匠
  • 유형분류 :무형유산 > 공예기술 > 목칠공예 > 목공예
  • 시대 : 역사 미상
  • 지정일 : 1989-06-15
  • 소재지 : 경주시 하동 119-2
箭筒은 일명 箭室, 矢筒 또는 箭筒이라고 부른다. 전통이란 화살을 담는 긴 통을 말하는데 東洋人은 이미 箭筒을 신석기시대인 虞임금 시대로 기록되어 있다. 또 신석기시대부터 석촉이 출토됨으로 화살통 역시 石器時代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기록으로 남은 虞임금 역시 신석기시대 인물이므로 기록과 일치된다. 조선시대의 成宗무렵에 經國大典에는 筒介匠이라고 하여 화살촉을 메고 다니는 통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로보아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화살통을 만든 사람을 정식 이름으로 筒介匠이라 하였다. 이 筒介匠은 원시시대부터 화살을 담아서 사냥에 이용하였음으로 그때부터 화살통은 人間生活의 필수품이었다. 더구나 전쟁을 할 때는 군사들이 화살을 넣고 다님으로 군수용품으로 없어서도 안 될 필수품이었다. 한국의 箭筒 역사는 물론 弓矢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矢(鏃)은 보존이 가능함으로 石器時代의 유물이 발견되지만 箭筒은 재료가 나무인 木材이기 때문에 보존이 불가능하여 그 유품을 찾아볼 수가 없다. 화살통의 발생은 궁과 실 등에 의하여 고증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한국에 화살촉이 나타난 것은 新石器時代부터이다. 근래 韓國考古學의 발달로 많은 곳을 調査發掘하였는데 많은 곳에서 石鏃이 발견되었다. 그 점으로 한국의 화살통은 그 역사 역시 신석기시대부터 라고 推測할 수 있다. 箭筒은 수렵용과 전쟁용 두 가지가 있다. 漢民族은 활을 잘 쏘고 말을 잘 타는 기마민족이라고 한다. 중국의 고대 옥편인 「說文解字」의 夷字 조에 의하면 夷字는 大人이 활을 쏘는 형태로 東夷民族이란 이름이 그로 인하여 발생되었다고 한다. 이만큼 한민족은 일찍부터 활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古代로부터 漢民族은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민족으로서 歷史記錄에 의하면 肅愼族은 고노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韓國民族은 고대로부터 우수한 활을 개발하여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中國의 漢民族이 樂浪四君을 설치하고 그 땅에서 생산되는 활을 樂良檀弓이라 하였는데 이 檀弓은 古朝鮮時代부터 사용하였던 弓으로서 중국에서는 檀弓이 가장 유명하였다. 中國측의 古代 記錄인 魏志東夷傳을 읽어보면 扶餘와 東沃沮 사람들이 弓ㆍ矢ㆍ刀ㆍ矛를 잘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三國時代에는 新羅弓이 매우 유명하여 멀리 唐나라까지 그 기술을 수출하였다. 즉 활을 잘 만드는 技能工이 唐에 가서 활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新羅의 花郞들은 武士的 精神을 배양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활을 잘 쏘아야 했기 때문에 활을 만드는데 정성을 드렸다. 高句麗時代에는 同盟이라는 행사때 樂浪의 언덕에 모여서 武術試合을 했으며 당시 溫達將軍의 이야기도 그 하나의 實例로서 高句麗 무사들이 메고 다니는 화살통(箭筒)의 모습은 현재 남아있는 高句麗 벽화에서 그 모양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즉 雙楹塚 主室西壁에 있는 狩獵圖의 武士가 화살통을 메고 있는데 그 모양은 上下 둥근 대나무통을 그대로 두고 중간은 가는 살로 박아 조각하듯 제작하였는데 이것은 말을 달릴 때 가볍고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제작된 모습이 있다. 무사들이 箭筒을 메는 위치는 바른편 어깨 밑인데 그 이유는 빠른 속도로 화살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이다. 高句麗는 建國때부터 東明聖王이 활을 쏘고 말을 잘 달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고, 또 高句麗國風에도 同盟이라고 하여 국중대회를 하였다. 바로 그 좋은 예가 溫達將軍의 이야기이다. 또 高句麗의 풍속 중에서는 미혼 자제를 따로 居處케하고 經을 읽으며 활쏘기를 가르친다고 하였으니 고구려인의 弓術은 어느 고대 민족보다 훌륭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百濟 比流王 17年 8月(320)에 궁궐의 서쪽에다 활 쏘는 射臺를 만들고 매달 보름이 되면 이곳에 모여 활 쏘는 연습을 한다고 하였으며, 또 아재왕(阿莘王) 7年 9月(398)에는 수도 사람들을 모아 西臺에서 활 쏘는 시합을 하게하고 이런 國風이 전국의 鄕里에까지 전하였다. 後의 기록에 「風俗에 騎射를 중히 여긴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百濟人들의 武士활동은 중국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新羅時代의 武士 활동은 元聖王 4年(788) 봄에 讀書出身科를 定하여 비로소 文武의 구별이 시작되었으며 활 잘 쏘는 사람으로 등용케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측 기록인 隋書에 보면 ‘8月 15日에 국중대회를 열고 활과 말을 잘 쏘거나 달리는 사람에게 馬와 布를 상금으로 준다고 하였으며, 또 舊唐書에는 8月 15日에 크게 연회를 베풀고 官吏들이 활을 잘 쏜다고 하였다. 이로보아 신라에서도 弓術을 장려하였으며 특기할 사항은 활 잘 쏘는 사람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을 택하였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이와 같이 신라 사람들 역시 무예를 장려하여 국력을 튼튼히 하였으며 이것이 곧 삼국을 통일케 하는 原動力이 되었던 것이다. 高麗時代에도 尙武精神을 중히 여기어 國王을 비롯한 대신들이 왕이 친히 성내의 장교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고 관람하였으며 또는 개성과 평양 무관들을 都城에 소집하여 장기간 궁술 시합을 하였으며 특히 顯宗은 文官도 四品이상으로 60세 이하인 사람은 휴일이면 반드시 東西의 외곽 사정에 나아가 활을 쏘도록 하였다. 또 宣宗은 활터를 특설하고 軍隊의 兵卒과 一般人도 활을 쏘게 하여 우수한 자에게는 銀碗大?을 상으로 내렸다 하였으니 국가에서 활쏘는 풍습을 중히 여겨 백성을 격려하였던 것이다. 또 지방에서도 농한기를 이용하여 매월 6일이면 관민을 동원하고 활쏘는 연습을 하여 官吏가 활을 잘 쏘면 직급을 높여주고 승진을 시켰으며, 일반인이 활을 잘 쏘면 관직을 내려 격려하였다. 이와 같이 고려에서도 중앙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전국이 궁술을 중하게 여겼다. 이와 같이 地方에서 武로서 인재를 등용하자 중앙에서는 1109年 즉, 肅宗 7年 7月에 國學 七齋에다 藝齋를 설치하여 武學을 개설하였으니 이것이 후일에 武科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高麗에서는 國家施策으로 弓術에 관한 많은 서책을 볼 수 있으나 일일이 소개할 수 는 없다. 또 高麗時代에는 활과 화살은 中國으로 보내는 物目中에 있으나 箭筒은 보이지 않으며 다만 高麗末 恭愍王의 작품으로 전하는 天山大獵圖가 國立中央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데 뒤로 화살통을 짊어지고 있으나 모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高麗時代에 화살을 만드는 장인으로 箭匠과 弩筒匠이 있었는데 이 弩筒匠이 화살통을 만드는 사람이다. 다음 朝鮮時代의 箭筒은 각 博物館에 남아있는 作品이 더러 있어 그 모양을 알 수 있는데 활량들이 운동 삼아 취미로 활 쏘는데 필요한 箭筒과 戰爭用 화살통이 다르다. 運動用으로 쓰이는 화살통은 裝飾이 高級으로 조각 또는 나전으로 꾸며져 있는데 길이가 89~100cm 사이며 둘레는 15~25cm 정도이다. 戰爭用 화살통은 그 길이가 매우 짧아 40~50cm정도이며, 화살을 많이 담았으므로 둘레가 49cm나 되는 것도 있다. 朝鮮時代 箭筒은 전쟁용과 연습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연습용은 화살수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즉 10개자리 15개자리 20개자리 30개자리 50개자리로 되어 있다. 보통 15개에서 20개자리가 가장 많다. 현재 남아있는 화살통은 대부분이 연습용으로 각 지방의 射亭을 중심으로 그 遺品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대개 그 材料를 考察해 보면 대나무(竹筒)을 사용한 것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紙箭筒으로 창호지를 꼬아서 만든 수법이 있으며 오동나무를 원통 또는 팔각으로 이루어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또 鮫皮를 이용하여 만든 鮫皮箭筒도 있으며 또는 종이를 여러 겹 발라서 칠을 먹여 만든 紙漆箭筒도 있다. 韓國에서 箭筒 生産地로는 全州ㆍ驛州ㆍ潭陽ㆍ慶州ㆍ醴泉ㆍ忠武ㆍ麗水 등지에서 만들었으나 지금은 潭陽과 光州 그리고 浦項의 金東鶴氏가 만들고 있다.

학술자료

  • 1. 한국의 주요 무형 문화재 : 전통장(1997년 발행)
    비도서 / 저자 : 불명 / 발행처 : 한국영상프로덕션
  • 2. 전통장 :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199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서헌강 ,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3. 중요무형문화재(1999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문화재연구회 / 발행처 : 대원사
  • 4. 한국의 전통공예와 음식(1999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한국 문화재청 , 한철모 , 大塚俊秀 / 발행처 : 문화재청
  • 5. 2001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작품전(2001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문화재청 / 발행처 : 문화재청
  • 6. 文化財大觀(2003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경상북도 / 발행처 : 경상북도
  • 7. 아름다운 만남 : 한권으로 만나는 중요무형문화재 215人 (2004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공연전시팀 / 발행처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8. 동이의 기상을 담는다. 전통장 김동학 [비디오녹화자료](2004년 발행)
    비도서 / 저자 : KBS미디어 / 발행처 : KBS미디어
  • 9. 한국의 장인 [비디오녹화자료](2005년 발행)
    비도서 / 저자 : 박찬수 외 19인 / 발행처 : KBS 미디어
  • 10. 전통으로 현대를 여는 예인들(2006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문화재청 / 발행처 : 문화재청
  • 11. 혼으로 빚어낸 전통의 격조 : 2008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작품전(2008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문화재청 , 양현정 외 3인 / 발행처 : 문화재청
  • 12. 아름다운 삶, 우리 공예 : 2009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2009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발행처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13. (2013)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2013년 발행)
    도록 / 저자 :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 / 발행처 :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
  • 14. 무형문화재를 만나다(201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김광희, 나지혜, 권윤지 / 발행처 : 북코리아
  • 15. (제93호 전통장) 김동학 : 나는 이거 화살통 참말 사랑합니다(2020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국립무형유산원 , 김동학 , 이승주 / 발행처 : 국립무형유산원,
  • 16. 文化財大觀 : 重要無形文化財篇(1996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문화재관리국 / 발행처 : 文化財管理局
  • 17. 전통장(1996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박상국 , 김호환 , 천진기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18.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 전통장 (箭筒匠)(1996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19. 전통장 [비디오녹화자료](1997년 발행)
    비도서 / 저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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