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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동 삼릉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拜洞 三陵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시대 : 신라
  • 지정일 : 1971-04-28
  • 소재지 : 경주시 배동 산73-1
三陵은 南山 西麓에 있고 新羅 朴氏 王인 第8代 阿達羅王, 第53代 神德王, 第54代 景明王의 三王陵이 나란히 있어 三陵이라고 傳한다. 阿達羅王과 神德王과는 卒年이 700餘年의 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이 近接해서 陵을 設置한 理由를 알 수 없다. 陵의 形式은 규모가 큰 圓形土墳이며 表飾物은 하나도 없고 床石이 하나 있으나 이것은 最近에 設置한 것이다. 中央은 位置한 神德王陵은 1593年과 1963年의 2次에 걸쳐 조사되어 內部構造가 밝혀졌는데 연道를 갖춘 石室이 있고 石室內部에는 面灰하고 밑에서 1.4m 높이까지 2段으로 方形 區劃을 만들고 그 안에 黃ㆍ白ㆍ朱ㆍ靑의 채색이 있었다고 한다. 또 3王에 관한 기록을 보면 阿達羅王은 逸聖王의 長子로서 特別한 治蹟은 없으나 31年동안 王位에 있다가 昇遐하였고 葬地에 관한 기록은 없다. 神德王은 이름은 景暉라 하고 阿達羅王의 遠孫이라고 한다. 6年동안 王位에 있었고 그 葬地에 關하여 三國史記에는 竹城에 장사지냈다 하였고 三國遺事에는 火葬하고 遺骨을 箴峴南에 묻었다고 하여 차이가 있다. 景明王은 이름을 昇英이라 하고 神德王의 太子이다. 8年동안 王位에 있었고 三國史記에는 黃福寺 北에 장사지냈다 하였고 三國遺事에는 皇福寺에서 火葬하고 遺骨을 省等仍山 西에서 散骨하였다고 하여 이 또한 차이가 있다. 여기 나오는 地名은 皇福寺를 除하고는 알 수 없으나 同一한 장소는 아닌 듯 하고 특히 景明王은 火葬 散骨하였으니 封墳이 있는 陵을 따로 만들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阿達羅王은 初期 王이고 神德ㆍ景明 2王은 末期 王이어서 그런지 陵의 制度는 모두 初期形式에서 그다지 發展하지 않은 形式이다.

학술자료

  • 1. 경주역사기행 : 역사를 알면 유물이 보인다(1999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하일식 / 발행처 : 그린글
  • 2. 쉼표, 경주 : 휴식이 필요한 당신을 위한 맞춤 경주 여행(2013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유승혜 / 발행처 : 퍼블리싱 컴퍼니 클
  • 3. 경주 걷기여행 :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2015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김영록 / 발행처 : 터치아트
  • 4. 답사여행 1번지 경주 : 2박3일 경주 제대로 즐기기(2016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최동군 / 발행처 : 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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