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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문왕릉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神文王陵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69-08-27
  • 소재지 : 경주시 배반동 453-1외
四天王寺에서 東으로 울창한 숲이있고 그안에 新羅 第31代 神文王陵이 있다. 이 陵의 形式은 武烈王陵에서 一段 發達된 形式이다. 즉 封土 밑에 벽돌 모양으로 加工한 돌을 마치 돌담을 쌓듯이 5段 정도 쌓고 그 위에 甲石을 덮었다. 또 이 石築에 기대어 加工된 三角形 돌을 數十個 기대어 놓았다. 이러한 形式은 自然石이던 護石이 加工된 三角形 石材로 변했고 그 안의 石築은 武烈王陵의 경우 正確히 알 수는 없으나 그 附近에 있는 傳金陽墓에서 一部 露出된 石築의 形式으로 미루어 그 形式보다 분명히 발전된 形式임을 알 수 있다. 이 三角形 護石 가운데서 南方을 向한 一石에는 「門」字를 陰刻하였으나 그 뜻은 알 수 없다. 封土 東쪽에 石床에 있으나 聖德王陵의 石床에 비하면 얕고 石材도 고르지 않아 原來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形式이 한번더 발달하면 聖德王陵에서와 같은 護石과 石床이 될 것이다. 이 王陵에는 아직 十二支像, 武人石, 文人石, 石獸 같은 表飾이 나타나지 않고 있음은 墓制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神文王은 文武王의 長子이며 諱를 政明이라고 하였다. 王은 三國統一 以後 國內의 整備에 힘쓰며 나라를 다스린지 12年 그해 7月에 薨御하니 諡號를 神文이라 하고 狼山 東쪽에 장례지냈다. 지금의 위치는 바로 狼山東方에 있어 記錄과 거의 一致하며 陵墓의 形式으로 보아도 이 陵을 神文王陵에 比定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 陵은 護石의 一部가 묻혀 있었으나 1970年 原形을 復原하고 鐵柵을 돌려 淨化가 이루어졌다.

학술자료

  • 1. 신라 신문왕대 10停의 설치와 체제정비(2005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한준수 / 발행처 : 한국고대사학회
  • 2. 신라 文武 · 神文王代의 집권정책과 骨品制(2004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李成市 , 金台植(번역자) , 橋本繁(번역자) / 발행처 : 신라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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