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이미지로보기

이전 다음

경주 탈해왕릉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脫解王陵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시대 : 신라
  • 지정일 : 1969-08-27
  • 소재지 : 경주시 동천동 산17 외 32필
慶州市街에서 西北方 瓢嚴 근처에 位置하는 圓形土墳이다. 주위에는 松林의 울창하고 前面은 平地를 이루었으나 後面은 약간 높다. 封墳 이외에 아무 施設이 없으며 封土 밑에 護石을 設置하였던 흔적은 外見上 찾아볼 수 없다. 다만 前面에 床石이 있으나 이것은 最近에 後孫들이 設置한 곳이다. 脫解王은 新羅 第4代 王으로서 나이 62세에 王位에 올랐다. 본래 倭國 東北 1千里에 위치한 多婆那國 所生으로 그 나라 王妃가 알(卵)을 낳음으로 상서럽지 못하다 하여 궤에 담아서 바다에 띄었더니 新羅 海岸에 까지 왔고 한 노파가 발견하여 궤를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까지 한 마리가 울었다고 하여 鵲字에서 鳥를 떼어버리고 昔으로 성을 삼고 궤를 풀어서 아이가 나왔다고 하여 脫解로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昔氏 王으로 最初의 王이 되었다. 王은 나라를 다스린지 24年에 薨御하니 城北쪽 壞井丘에 장례 지냈다고도 하고 혹은 양井丘에서 水葬하였다고도 하나 壞井丘나 양井丘의 位置를 알 수 없고 다만 城北이라고 한 점은 현 위치와 근사하다. 陵의 形式 자체에는 특이한 점이 없는 일반적인 형식이지만 新羅 初期의 王陵이고 특히 最初의 昔氏 王陵이라는 점에서 史蹟으로서의 重要性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封土 주위에 最近에 鐵柵을 設置하여 保護措置를 취하고 있다.

학술자료

  • 1. 경주 동천동 510-1 유적 : 탈해왕릉 및 표암정비사업(주차장, 녹지) 부지 발굴조사 보고서(2014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성윤 이민형 최진욱 손명순 / 발행처 : 新羅文化遺産硏究院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문화유산과
전화번호 :
 054-880-3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