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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이견대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利見臺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종교신앙 > 구비전승지 > 구비전승지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67-08-01
  • 소재지 :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외
이곳은 三國統一의 英君인 文武大王의 殺身輔國의 魂이 깃든 意義깊은 곳이다. 三國遺事에서 利見臺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神文王은 西紀 681年 7月 7日에 卽位하여 父王인 文武大王을 위하여 文武王이 잠든 곳이 잘 보이는 곳(오늘의 경북 월성군 양북면 용당리)에 感恩寺를 築造하였는데 다음해인 西紀 682年 5月 1日에 感恩寺 앞바다에 한 작은 산이 떠 내려왔다. 日官이 접쳐 본 결과 文武大王과 金庾信이 서로 意氣를 합하여 나라를 지킬 寶器를 전할 징조하는 것이었으므로 神文王은 크게 기뻐하고 同年 7月에 東海岸에 나아가서 바다에 뜬 작은 산을 바라보았다. 山勢는 마치 龜頭같고 그 위에는 한줄기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이튿날부터 7일동안 天地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일어나는 혼돈이 계속되었다. 同月 16日이 되어 비바람이 걷히고 바다가 평온해지자 神文王은 배를 타고 바다에 건너 그 위에 올랐다. 산에 오르자 왕에게 黑玉帶를 바쳐오는 용이 있었다. 王은 그 용에게 대나무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조화를 물었는데 용은 「비유컨대 한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는 본시 합한 뒤에야 소리가 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大王께서 소리로써 天下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이니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세상이 和平해질 것입니다. 文武王과 金庾信公이 마음을 같이하여 이 큰 마음을 같이하여 이 큰 보배를 내리시고 저로 하여금 王께 바치게 하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王은 대나무를 베어 宮城으로 돌아와서 곧 피리를 만들어 月城의 天尊庫에 보관했다. 그 피리는 신통한 효험이 있어서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모든 병이 나아졌다. 또 가물 때는 비를 내리게 하고 장마 질 때는 비를 개이게 했다. 그리고 바람을 잠재우고 물결을 가라 앉혔다. 그리하여 그 피리를 모든 波浪를 그치게 하는 피리라 하여 「萬波息笛」이라 이름하고 나라의 보물로 하였다. 世宗實錄地理志에도 同一한 記錄이 있는데 利見臺라는 명칭은 周易에 있는 「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글귀에서 빌어 온 것으로 神文王이 바다에 나타난 龍을 보고나서 나라에 큰 이익이 있었다 하여 비롯된 것이다. 利見臺는 山麓에서 계속되는 海岸에 있는 언덕인데 神文王이 쌓았던 樓臺는 없어졌던 것을 1970年 發掘 實施하여 建物址를 確認하였다.

학술자료

  • 1. 문학 : 경주 이견대(利見臺) 시문 연구(2014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강석근 / 발행처 : 온지학회
  • 2. 역학사상(易學思想) 입장에서 본 `이견대 (利見臺)`의 의미 연구(2016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서근식 / 발행처 : 한국철학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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