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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군동 사지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千軍洞 寺址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시대 : 신라
  • 지정일 : 1963-01-21
  • 소재지 : 경주시 천군동 548-1외
千軍里 寺址는 逸名寺址로서 그 寺刹에 關係가 있을만한 記錄이나 創建年代를 알 수 없다. 寺址는 慶州市內에서 芬皇寺 앞을 지나 甘浦로 나가는 道路에 따라 明活山城의 山麓을 들고 人工湖水인 普門池의 北쪽 끝에서 約300m 北쪽에 典型的인 新羅樣式의 石塔 2基가 東西로 논가운데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千軍里 寺址이다. 寺址에는 2基의 石塔 外에는 地上에서는 뚜렷한 建物基壇 등을 確認할 수 없으며 金堂址 附近에 統一時代의 圓形柱座가 彫出된 礎石이 논가에 몇몇 散在하고 그 밖의 군데군데 礎石과 寺刹에서 使用되었던 石材들이 보일 뿐이다. 이 寺址에 대해서는 1938年에 日人學者들에 의하여 發掘 調査되었고 當時 倒壞되었던 塔을 지금 보는 것과 같이 復元하였다. 이 發掘調査에 의하여 밝혀진 바는 대략 다음과 같다. 金堂址는 基壇 南面의 全面 및 北面의 一部에 地臺石이 남아 있었고 西南隅部와 北面, 東面에 地臺石 밖에 一部 舊地表에 濟文?을 깔고 있는 것이 確認되고 基壇 南面 中央部에서 階段 側面地臺石이 있었다. 基壇 上面에는 礎石은 전혀 遺存치 않아 다만 基壇 規模만을 알게 되었다. 講堂址는 礎石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으나 礎石 및 積心石이 東西面과 南面에서 確認되어 講堂의 規模와 柱間을 確認하게 되었다. 또 講堂址 左右에서는 廻廊이 아닌 建物址가 連結되는 것을 알게 되고 廻廊은 극히 부분적인 發掘로 礎石 積心石을 찾았다. 中門址는 塔南쪽에서 역시 一部 礎石 積心石을 確認하였으나 그 規模를 確認하기 까지는 調査되지 못했다. 이 調査를 主管하였던 米田美代治氏의 復元案에 의하면 金堂은 正, 側面이 各 5間인 建物로, 講堂은 正面 8間, 側面 3間, 中門은 正面 3間, 側面 2間의 建物로 되었고 中門에서 講堂까지의 寺刹 中心部의 規模를 南北 260尺, 東北 200尺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發掘調査에서는 金堂址와 左右 廻廊사이를 發掘하지 않았기 때문에 金堂址에서 廻廊으로 나가는 翼廊에 대한 調査를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調査者가 우리나라 雙塔式伽藍이 日本의 雙塔伽藍인 所謂 藥師式伽藍配置와 꼭 같은 것으로 誤認하여 金堂에서 廻廊으로 나가는 翼廊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雙塔式伽藍에서는 佛國寺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고 또 解放後의 調査에서 밝혀진 것이나 感恩寺址, 望德寺址등에서 翼廊의 存在가 確認되어 있고 千軍里 寺址 역시 復元案에 의한 金堂 位置와 그에 相應하는 左右 廻廊의 柱間變化를 보면 틀림없이 翼廊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寺址에서는 많은 瓦當類가 發見되어 있었으나 특히 여기서 發見된 建物 용마루 끝에 올리는 치尾는 가까운 大形의 것으로 現在 國立慶州博物館에 展示되어 있다.

학술자료

  • 1. 경주의 불교유적(2010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김환대 / 발행처 : 한국학술정보
  • 2. 慶州儒敎文化遺蹟(2010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경주유교문화유적 편찬위원회 / 발행처 : 경주향교
  • 3. 한국고고학저널(2013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구자진 외 9인,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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