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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덕왕릉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景德王陵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63-01-21
  • 소재지 :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산8외
景德王은 新羅 第35代王이다. 新羅의 王陵치고는 比較的 遠距離에 있는 陵이다. 丘陵 中腹에 位置하였고 封土밑에는 板石으로 짠 護石이 돌려 있다. 板石과 板石사이에는 撑石을 끼워 板石을 支撑하였고 그 위에 方向을 따라 十二支神像이 彫刻되었으며 板石위에는 甲石을 덮었다. 護石 밖에는 一定한 距離에 放射形 박석을 깔고 그 밖에 난간기둥을 세웠다. 기둥 側面에는 圓形구멍이 上下 두 개씩 뚫려 있어 貫石을 끼게 되어있으나 지금은 몇 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외에는 다른 外護飾物이 없으나 十二支神像의 彫刻도 優秀하고 護石의 狀態로 比較的 良好한 便이다. 景德王은 聖德王의 아들이고 이름을 憲英이라고 한다. 24年 동안 王位에 있는 동안 太平의 盛代를 맞이하였고 王 또한 全國의 行政區域, 職制 등의 改編을 斷行하기도 하였다. 王이 돌아감에 諡號를 景德이라 하였고 葬地에 關하여 三國史記에는 毛祗寺 西쪽 언덕이라고 하였고 三國遺事에는 「처음 頃只寺 西쪽 언덕에 장사지냈고 돌을 다듬어 陵을 만들었다. 뒤에 楊長谷中에 移葬하였다」라고 자세한 기록이 있다. 여기 나오는 毛祗寺ㆍ頃只寺 또는 楊長谷 등의 位置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鍊石爲陵」의 表現이 十二支像을 조각한 護石을 말하는 것이라면 現狀과 一致된다고 하겠다. 統一 以後의 陵墓로서 特異한 制度를 보여주는 一例이다.

학술자료

  • 1. 新羅 景德王代(742~765)의 국내외정세와 對日外交(2007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김선숙 / 발행처 : 군사편찬연구소
  • 2. 경덕왕과 승려의 교류양상과 그 의미(2013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전보영 / 발행처 : 한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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