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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륜사지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興輪寺址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시대 : 신라
  • 지정일 : 1963-01-21
  • 소재지 : 경주시 사정동 281-1
興輪寺는 新羅寺刹 가운데서는 가장 일찍이 建立된 것으로 그 創建은 眞興王 5年(西紀 544年) 春 2月에 完成되었으며 3月에 사람들이 出家하여 僧尼가 되어 奉佛함을 許했음을 三國史記 記錄으로 알 수 있다. 또 記錄說話로서 三國史記에 記錄된 것을 보면 新羅 13代王인 味鄒王 3年(西紀 264年) 成國公主가 疾患에 있었으나 巫術을 醫術이 不效하여 勅使를 보내어 四方에 名醫를 구하게 되자 高句麗 僧 我道가 宮闕에 가서 그 疾患을 治癒케 했다. 王이 大悅하여 그 所願을 묻기에 답하기를 貧道가 무엇을 求하려 하겠습니까 다만 天鏡林에 寺刹을 創하여 佛敎를 크게 일으켜서 邦家를 奉福할 것을 願할 뿐이라 했다. 王은 이것을 許諾하여 王工을 일으킬 것을 命하였다. 매우 質儉하여 새를 얽고 집을 이었으며 이곳에 居住하면서 講演하였더니 마침 天花가 落地하였기에 興輪寺라 했다는 것이다. 이 傳說을 바로 밑을 수는 없으나 興輪寺는 이렇듯 王의 崇信을 받은 寺刹로 오래도록 그 保護를 받았으며 그 法燈도 高麗時代까지 이어진 듯하다. 寺觀도 記錄에 의해 짐작하면 金堂, 塔, 左經樓, 南門(中門) 및 講堂들이 있었고 金堂에는 普賢若薩의 壁畵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寺址는 新羅 始祖王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五陵 北쪽 논과 밭 그리고 民家에 포함된 地域에 있다. 원래 興輪寺址를 잘 알지 못했으나 60餘年前 우연히 金堂址로 보이는 土壇과 石槽, 石佛등이 있던 이곳을 그 당시의 俗地名을 참작하여 興輪寺址로 推定하게 된 것이다. 金堂址는 지금 民家 뒤뜰의 감나무 밭이 되었으나 比較的 安定된 狀態로 保存되어 있다. 1972年 慶州市內에서 京釜高速道路로 連結되는 進入路인 金城路 開設工事에서 興輪寺址 境內로 생각되는 部分의 四邊 一部가 道路에 들어가게 되었기에 그 部分 즉 四廻廊地와 講堂 四端部로 推定되는 部分에 求한 發掘調査가 實施되었다. 그 結果 廻廊基壇이나 講堂의 基壇으로 보이는 土壇이 매우 破損된 狀態로 確認되었으나 基壇石들은 거의 原位置에 남은 것을 보지 못하였다. 다만 廻廊과 講堂으로 보이는 礎石이 빠진 구멍들이 몇몇 發見되었다. 이 寺址에 대한 더욱 確實하고 또 金堂址 뿐만 아닌 周邊 主要部分의 究明과 保存은 本格的인 發掘調査가 이뤄져서 그에 따라 實施되어야 할 것 같다. 1972年의 發掘時 寺址의 遺構 究明에서는 充分한 資料를 얻지 못하였으나 그 出土遺物에서는 各種 古瓦類 특히 三國時代의 瓦當類가 많이 出土되었으며 그 밖에 慶州地區에서 몇 개 發見된바 있는 用途不明의 불形鬼面전이 塔址로 傳해진 부근 發掘坑에서 出土되어 그의 出處가 正確히 確認되었고 또 表面채集된 것이나 南山新城碑 破片이 發見되어 學界의 關心을 모운바 있다.

학술자료

  • 1. 新羅 十聖攷 : 興輪寺金堂의 塑像安置와 그 思想性(1977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金煐泰 / 발행처 : 동국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2. 신라 興輪寺의 창건과 변천(1999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신동하 / 발행처 : 동덕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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