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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제목
창업과 수성( )
작성자
관리자
내용
수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은 아버지인 이연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을 장악했다. 
이듬해 2세 양제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를 폐하고 당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 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 두여회,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 방현령, 강직한 대부 위징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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