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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제목
청백리( )
작성자
관리자
내용
황희와 맹사성 등은 청렴한 관리로 이름 높았다. 
조선시대에 청백리로 불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의 행동이 청렴결백한 것을 뜻하기보다는 
국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올곧은 관리의 
표상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선발된 청백리도 그리 많지는 않으며, 
태조 때 5명을 청백리에 녹선 한 이후 순조때까지 
모두 2백17명의 청백리를 선발했다. 
이와 함께 일단 청백리에 녹선되면 
상당한 부상과 혜택이 주어졌다. 

청백리가 나면 우선 본인의 벼슬이 높아지거나 
상품 및 상금 등의 부상도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청백리의 후손들도 재물 등을 
하사 받았고 관직에 특채되는 등의 혜택을 받았다. 

따라서 청백리는 가문의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으며, 
청백리 제도에 대한 기원은 멀리 고대 중국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68년에 이미 염리에 대한 표창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한나라 송나라 등의 문헌에도 계속 청백리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국가사회의 안정도와 질서수준은 
그 나라 공직자의 도덕성이 좌우한다. 

다산 정약용도『목민심서』에서 청렴(淸廉)은 목민관의 본무(本務)요, 
모든 선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가 없다. 
욕망(欲望)이 큰 자(者)일수록 반드시 청렴해야 할 것이니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까닭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깊은 지혜를 가진 선비로서 청렴을 좌우명으로 삼고 
빈욕을 경계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라면서 
공직윤리의 근본을 청렴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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