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YEONGSANGBUK-DO

Enlarge font sizeReduce font sizePrint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최언위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신라말에서 고려초기의 문인. 초명은 인연(仁 ). 18세에 당나라에 유학하고 급제하여 벼슬에 있다가 42세에 귀국.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가서 태자사부(太子師傅)가 되고 대봉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를 지냈다. 정광(政匡)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영공(文英公)이다.

그의 생애는『고려사(高麗史)』와『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통하여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나 그의 역사적 위상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최언위를 거론할 때 먼저 떠올리는 사실은 고승들의 행적을 김석문(金石文)을 통하여 남겨 놓았다는 점인데, 시대가 올라갈수록 사료가 부족한 역사학계의 현실에서 그가 찬한 비문(碑文)들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미 이 자료는 당대의 불교계와 사회 변화를 연구하는 데 상당한 전거를 제공하고 있다.

최언위는 나말여초의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새로운 고려사회가 건국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겪었던 인물이다. 대부분 사회의 전환기 속에서는 도태되어 간 인물들이 많았던 반면 최언위는 당시의 이름 있는 선사들의 비문을 지어 그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TOP